NO.1: chipstars affiliates
[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조선 문종 현릉과 효종 영릉의 석호
기자말
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 작가입니다.'거룩한 장도,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1970,1980년대 못생겨서 사랑받았던 인형이 있었다.일명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 그것이다.웃고,울고,토라진 듯한 표정의 작은 인형들.당시로서는 새로운 PVC 소재의 인형이었고,예쁘고 완벽한 얼굴보다는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표정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인기의 비결은 역설적으로 '못생김'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못난이'들이 있었다.그것도 무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산중의 왕인 호랑이인데 말이다.그것도 현실 속의 절대권력 왕릉을 지키는 호랑이인데도 말이다.이번 여정은 바로 이 '못생김의 매력과 그 매력을 알아본 안목'을 찾아가는 길이었다.지난 8월 30일,경기도 동부지역 조선왕릉 일원을 탐방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구리 동구릉이었다.이곳은 말 그대로 '동쪽에 있는 아홉 능'이다.제1대 태조 이성계 왕릉인 건원릉,조선에서 가장 오래 집권했던 21대 영조의 원릉 등 조선왕릉 9기,17위의 왕과 왕비가 모셔진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다.
조선왕릉은 풍수에 따라 능지를 정하고,Chipstars affiliate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진입·제향·능침공간을 단계적으로 구성했다.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따라가면 정자각이 나타난다.그 뒤 높은 언덕 위로 왕이 잠든 능침공간,봉분 주변에는 난간석을 비롯하여 다양한 석물 등이 배치된다.
또한 봉분 가까이에서는 왕을 지키는 동물이 있다.석양(石羊)과 석호(石虎)다.양이 온순함과 길상을 상징한다면 호랑이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능침을 지키는 벽사와 수호의 동물이다.살아생전에는 왕을 호위하던 군사가 있었다면 죽은 왕의 곁에는 돌로 만든 호랑이가 지킨다.
듬직한 못난이 호랑이,현릉 석호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문종 왕릉인 현릉(顯陵) 석호를 보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석호를 볼 수 없었다.왕릉이 원래 비공개 지역이고 구조상 높은 언덕 위에 봉분이 있고 그 주위로 곡장(담장)이 둘려져 있어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다.그래서 궁능유적본부에 요청해 이미지를 제공받았다.
현릉의 석호를 딱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전체적으로 둔중하고 짧뚱하니 일견 미련해 보인다.얼굴은 크고 넙데데하고 왕방울 눈에 납작코,콧수염은 뻣뻣한 호랑이 수염이 아니라 마치 맹구의 콧물 자국 같다.입 모양은 좌우로 만면의 미소를 자아내고 한쪽 송곳니의 표현은 부드럽지만 뭔가 반전이 있다.
하지만 못생겼다고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나무기둥 같이 두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발톱을 숨겼지만,Chipstars affiliate묵직한 한방이 있는 저 호랑이 발을 보라.어찌 함부로 범접하리오.석공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야생 호랑이의 재현이 아니라 왕의 영혼을 보호할 수호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능 주인공인 문종도 그렇다.일응 '병약하여 일찍 죽은 왕' 정도로 기억하는데,사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관람만 해봐도 문종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느낄 것이다.측우기를 만든 것도 그렇고,천문·역법·산술과 군사에도 관심이 깊었다.세종의 장남으로 일찍 세자에 책봉되었고,세종의 건강이 악화된 뒤에는 실질적으로 정무를 대리할 정도였다.
질리지 않은 못난이 호랑이,영릉 석호
두 번째 여정은 여주 효종의 영릉(寧陵)이었다.영릉이 처음부터 여주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효종이 1659년 세상을 떠난 뒤 처음에는 동구릉 건원릉 서쪽에 능을 조성하였다.그러나 석물에 틈이 생겨 물이 스며들 우려가 제기되면서 1673년 현재의 여주로 천릉한 것이다.
먼저 능침의 석호를 보자.세월이 200여 년이나 흘렀고,미감도 변했다.조선 전기의 석호가 단순하고 힘 있는 소위 덩어리 미감을 강조했다면 조선 중기로 갈수록 얼굴과 몸의 표현에 변화가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크기가 작아지고 날렵해졌다.좀 더 눈방울과 코 모양의 윤곽이 뚜렷해졌지만,분위기는 순박하고 어벙해 보인다.히죽대니 입술 모양새가 동네 바보형 같이 친근하다.처음 한번 보면 뭐 이런 못생긴 호랑이가 있나 싶을 것이다.그러나 두 번,세 번 아니,계속 보아도 신기하게 질리지가 않았다.
그리고 저 꼬리를 보라.어떤 삿된 기운이 접근할라치면 꼬리가 전광석화로 죽비 내리쳐 정신을 퍼뜩들게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 못난이 호랑이가 지키고 있는 왕은 역설적으로 조선 왕 가운데 누구보다 호랑이 같은 꿈을 품었던 인물이었다.봉림대군이었던 효종은 병자호란 이후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경험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1649년 왕위에 오른 효종은 이를 갈고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북벌을 준비했다.
효종의 이런 면모에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신속(申洬)이 농업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농가집성>을 편찬한 노력에 상을 내렸는데,공교롭게도 '호피(虎皮)',호랑이 가죽이었다.당시 호피는 권위와 용맹을 상징했던 만큼 귀하고 상징성이 강한 물품이었다.왕이 신하에게 호피를 하사한다는 것은 그의 공을 특별히 인정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효종에게는 북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컸다.대동법을 충청도,전라도까지 확대했으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조사하거나 지방을 잘 다스린 관료들을 높은 벼슬에 제수하기도 했다.효종실록에는 이런 하교가 나온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고,나라는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못난이 호랑이로 본 수호의 진정한 의미
문종과 효종.두 왕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다.문종은 세종의 찬란한 시대를 이어받았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고,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딛고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다.그들의 삶은 달랐지만 죽음 이후에는 똑같은 호랑이가 곁을 지켰다.
오래 살아남는 문화유산에는 완벽함과는 다른 힘이 있다.600년 동안 눈비를 맞으며 얼굴이 닳고 몸에 이끼가 내려앉아도 석호는 여전히 왕 곁을 떠나지 않는다.왕이 세상을 떠나고,왕조가 사라지고,나라가 바뀌고,세상이 몇 번이나 뒤집혀도,호랑이는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조선왕릉의 못난이 호랑이를 보면 '수호'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수호란 반드시 강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떠나지 않는 것이다.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이다.잘생기지 않아도 좋다.조금 어설퍼도 괜찮다.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현릉과 영릉의 못난이 호랑이들은 오늘도 그렇게 말없이 조선의 왕을 지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재학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hipstars affiliates
:이 교수는 우선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에 적합한 토양은 아니라고 전제했다.
Chipstars affiliate, 일각에선 이강인을 향한 누리꾼들의 비판이 도를 넘고 있단 지적도 나왔다.